[햇살배움터 교육네트워크 <톡 터놓고 이야기하는 마을+교육 수다> 두번째 모임.
마을에서 아이들과 함께 걸어 온 길.
2012년 12월 3일(월)
▷▶ 사회자(최문철) : 이 모임(마을+교육 수다, 주최:햇살배움터 교육네트워크)의 취지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으면 좋겠다’라는 것이었고요. 지난번엔 교육에 대한 생각을 쓰고, 붙이고, 분류하고 읽어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서로 겹치는 생각, 다른 생각을 알아 갔습니다. 홍동에 여러 단체가 있고, 교육으로써 일정부분을 감당하고 있는 주체들인데, 그것을 자각하고 교육에 대해 공부하고 함께 소통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안정순 선생님, 박신자선생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안선생님께는 아사모(아이사랑모임) 이야기부터 듣고 싶고요. 박신자선생님은 마을주민이자, 학교 교사, 학부모로써, 학교 안팎에서 가지고 계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주세요.
▷▶ 안정순 : 오랜만에 아사모 이야기를 듣네요.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학부모입장이었어요. 농사 짓기 위해 시골로 오면서, 아이 학교를 염두에 두고 홍동(장곡)으로 왔지요. 1998년 큰 아들 정우가 장곡초등학교를 입학했어요. 밤톨 같은 애들이 한눈에 보이는데, 작은 규모가 마음에 들었어요. 하지만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게, 부모입장에서 마음 편할 일만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적은 숫자이기 때문에 선생님 한 명이 미치는 그 영향력이 엄청났어요. 2000년도에 홍동으로 이사를 오고, 홍동초등학교로 전학 오면서 자의반 타의반 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귀농하고보니, 시골에는 마을에 또래 아이들이 없었어요. 홍동초 3학년으로 정우가 전학을 왔는데, 선생님도 낯설고, 형도 낯설고, 또래도 낯설고, 동생도 없고. 그런 상황에서 심심하고 재미없이 학교를 다녔던 것 같아요. 어른들은 농사일을 하면서, 동료들로 만난 관계들이 있으니깐 내가 낯선 곳에 있다는 생각을 안 했었는데, 우리 아이한테는 굉장히 낯선 곳에 어른들의 선택에 의해서 뚝 떨어진 그런 상황이 된 것이었죠.
‘우리 아이에게 관계를 만들어주자. 학교에 갔을 때, 일단 아는 얼굴이 있어야 되겠다. ‘아는 형도 있고, 아는 동생도 있고, 그래서 학교에 갔을 때, 누군가 자기를 알아봐 주기도 하고, 자기도 많은 얼굴들 가운데, 아는 얼굴을 발견했을 때 살짝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외롭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아사모를 만들었어요. 2000년, 3학년 후반이었죠. 열 가정이 참여했는데, 반은 귀농한 사람들이었고, 창정, 송풍 중심으로 아이들을 학교 보냈던 원래 마을 주민 가정이 함께 했어요.
엄마들부터 친해지면, 아이들도 친해지리라는 생각으로 모임을 했어요. 홍동초등학교 뒤에 낡은 회관 자리에서 집마다 먹을 것을 좀 가지고 와서 수다 떨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친해졌어요. 학기 중에는 한달에 한번씩 만났고요. 방학에는 (지금처럼 방학프로그램이 있지 않았으니깐) ‘계절가정학교’라는 이름으로 일부러 자주 만날 계기를 만들었어요. ‘계절가족학교’에서는 엄마 아빠들이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염색도 하고, 비누도 만들고, 만리포에 놀러도 갔어요. 홍동초 야외 독서실에서 주로 만났지요. 그러다 보니 학교 운동장에 제초제 치는 것도 눈에 보였어요. 엄마아빠들이 아이들하고 힘 모아서, 풀도 뽑고. 학교에 제초제 치지 말자 건의를 했어요. 3년쯤 지나니깐 어른들 없어도, 아이들의 관계가 만들어지더라고요. 학교 가는 것을 아이들이 참 좋아했어요.
그때 저를 비롯한 어른들이 반성 많이 했어요. 농사지으러 농촌에 내려오면서 따로 출퇴근을 안하고 아이들을 하루 종일 볼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을 돌본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사실은 그게 아니더라고요. 농사를 짓고 바빠지니깐, 아이들이 내 가시권 안에 피사체와 풍경으로 있을 뿐이지,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소통하는 관계를 맺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부러 일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아사모(아이사랑모임)를 했어요. 햇수가 가면서 프로그램도 다양해졌어요. 부모님 중에 교사가 되어 풍물, 요리교실 등도 했고요.
2001년 겨울, 정농회 여성생산자 모임에서 ‘여성농업인센터’를 소개 받으면서, 아사모 회원들이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모았지요. 여성농업인센터 사업을 통해서, 공간을 마련해서 작은 도서관도 만들고, 엄마들이 자원봉사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와서 자연스럽게 책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놀지 않을까. 일년 사업으로 계속 신청하고 선정하는 사업인데, 선정이 안되더라도 공간과 책, 그동안 해온 과정이 있으니, 어느 엄마라도 봉사로 그 자리에 있으면 그 기능이 계속되지 않겠냐고 생각했어요. 여농센터 사업 시작하면서, 작은도서관 사업을 가장 중점에 뒀어요. 당시에는 학교 방과후교실이 거의 없어서, 전교생 백 여명 가운데, 70명이상이 여농센터 방과후교실을 이용했어요.
그러면서 아사모를 해체했어요. 자생적인 학부모 모임이 있어, 견제도 하고 의견제시도 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여농센터 공부방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으로 들어가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지요. 여농센터 운영위원으로도 들어가고, 공부방 교사로도 들어가면서 여농센터 공부방 사업으로 이어졌어요.
그 즈음, 정부는 작은학교 통폐합을 중점 교육정책으로 내세웠고, 그에 대한 반향으로 작은학교살리기 운동이 활발했지요. 여농센터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작은학교살리기 위한 다른 지역의 사례들도 이야기를 듣고, 남한산초등학교 견학도 다녀오고, 천안 쪽에 있는 거산학교도 다녀오면서, 우리지역에 있는 초등학교가 어떻게 크면 좋을까, 우리아이들이 어떤 학교에서 크면 좋을까 학교에 대한 관심들이 많아졌어요. 그 맥락에서 여농센터를 중심으로 학부모와 현직 선생님들이 같이 하면서 만들어진 모임이 홍아사(홍동아이사랑)예요. 작은 학교를 살리자는 행사에 참여하면서, 우리지역학교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지 고민을 함께 했지요. 그 중에 학부모들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통로로 학교운영위원임을 알게 되고 초등학교에 의견을 제시하고, 학부모회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초등학교 학부모회(운영위원회)에서는 먼저 급식을 바꾸려고 노력했어요. 2000년도에 운영위원으로 들어가면서, 급식문제를 제기 했지요. 당시에 우리 아이들이 학교급식으로 정부미를 먹었어요. 상황이 안 좋을 때는 2년 전에 수확한 정부미도 급식으로 나왔어요. 우리가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겠다고 풀무생협이나 홍동농협 작목회를 통해 우리 쌀을 도시사람들한테 판매하기 위해 엄청 홍보를 하잖아요. 정작 우리 아이들은 정체불명의 정부미를 먹는다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부모가 농사짓는 사람으로써 가장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지요. 2년 동안 학교 운영위원회를 갈 때마다 급식 이야기를 했어요.
당시 정부미와 친환경 쌀 가격 차이가 거의 3배였어요. 풀무생협, 농협 작목회에 가서, 생산자 조직을 설득하기 시작했어요. ‘유기농 쌀을 홍보하기 위해서 도시에서 굉장히 많은 홍보비를 들이고, 소비자들 끌어 들여 대접을 하는데, 우리 아이들도 몇 년 후에는 고객이다. 어렸을 때 우리 쌀을 먹여놔서 그게 입에 붙으면 그 아이들이 농촌에 살건 도시에 살건 그 쌀 맛을 다시 찾을 것이다. 고객들에만 홍보비를 쓰지 말고, 우리 마을에서 자라고 있는 잠재고객에게도 투자했으면 좋겠다’라고 설득했지요.
학교 안으로는 영양사를 설득해서, 몇 년 치 식재료 자료를 다 뽑았어요. 쌀과 부식, 어디서부터 변화해야 할지, 얼만큼 비용부담을 해야 할지 감을 잡아야 하니깐요. 농협 작목회에 설득해서, 첫해 농협 작목회에서 홍동지역 친환경 쌀과 일반 정부쌀의 차액을 작목회에서 보존해주는 식으로 2002년 쌀부터 지역의 유기농쌀로 바꿨어요. 몇 년 지나면서 무료급식이 시작이 되면서, 급식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서, 학교와 교사 아이들 설문조사를 통해 급식비를 안내도 되는데, 친환경 급식을 먹기 위해서 급식비를 일부 조금 더 부담을 할 수 있는지 조사를 했어요. 몇 년 친환경 쌀을 먹다 보니깐 반응이 나오더라고요. 충청도는 모두 무료급식이었는데, 홍동초등학교는 학부모들이 일부 부담을 해서, 전체 부식은 아니어도, 풀무생협을 통해서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몇 가지 부식부터 친환경급식으로 바꿨어요.
처음에는 학부모들끼리도 ‘친환경 쌀 먹어야 되지 않나’ 라고 이야기 하기가 참 민망했어요. 나는 친환경 쌀 농사지으니깐 그 이야기 하기가 수월한데, 관행농으로 농사짓는 학부모들에게는 참 뜬금없는 말이었거든요. ‘그래, 너 잘났어.’ 하면서 등 돌리는 분위기가 될 수 있었는데. 생산자조직에서 2-3년 차액이 되는 비용, 매년 1-2천만 원을 생산자조직에서 보존을 해 주면서 학부모들도 그 부분에서 마음이 많이 움직였다고 생각해요. 학부모회와 운영위원회에서를 통해, 학부모들이 직접 운동장 제초작업을 했어요. 당시 학교는 방학을 이용해 운동장에 제초제를 뿌렸어요. 학교에서 가정안내문으로 알리면, 할머니도 나오시고, 엄마도 나오고 아빠도 나오고, 정 안되면 아빠들은 예초기 가지고 와서 돌리고, 트랙터로 갈기도 했어요. 귀농자든, 여기서 계속 살았던 학부모든 아이들을 함께 돌본다는 건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서로 협력해서 학부모 활동할 때 참 좋았어요.
그리고 아이를 기르면서 학부모로써 제가 큰 것 같아요. 아이가 1학년 때는 나도 1학년이었던 것 같고, 아이가 6학년 때는 나도 6학년이었던 것 같고, 아이가 중학교 가니깐 저도 중학생 된 것 같고, 이런 식으로 아이의 성장에 맞춰서 저의 관심도 조금씩 커지고,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조금씩 많아지고. 오늘까지 이렇게 해왔네요. 제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제가 움직인 과정을 쭉 보니깐, 저를 움직인 원동력은 이기심이었어요. 우리 아이를 위한 삶, 우리 아이가 너무 귀하기 때문에 우리 아이한테 나쁜 것이 아이 주변에 있는 꼴을 볼 수가 없는 거예요. 바꾸고 싶고, 좋은 것을 우리 아이 옆에 두고 싶고. 그런 마음이 저를 움직였어요. 다행히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이기심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했어요.
정우 6학년 때, 대안중학교를 만들까 생각을 했었어요. 정우가 6학년 때, 홍동중학교는 정말 보내기 싫은 학교였어요. 체벌도 심했고, 홍동중에 주먹 쓰는 애들도 있었어요. 풀무학교를 꼭 중학교를 보내야 할까, 대안중학교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 대안중학교를 만들고 싶은 것이 정말 정우를 위하는 것일까? 나를 위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를 위한 일인 것 같았어요. 제가 마음에 들지 않고, 학교에 대한 신뢰가 없었거든요. 또래 아이들이 20명이 안 되는데, 그 아이들 중에서 서너 명을 따로 모아서 뭔가를 하면, 과연 지역에서 오가며 만날 때 어떤 관계로 만나질까? 정우와 윤호가 학교졸업 후에 도시에서 살더라도 가끔 여기에 내려올 때는 ‘홍동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하길 바라는데, 중학교를 따로 만들면, 아이들 관계가 어떻게 맺어질까? 지역에 대한 마음이 어떻게 나타날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할 짓이 못되겠다 라고 결론을 냈지요.
아이에게 영향을 주는 교육환경은 시설도, 프로그램도 아니예요. 1순위는 친구예요. 아이가 학교를 다니면서 관계를 가져온 친구들, 그 관계를 맺기 위해서, 아사모를 시작했던 거잖아요. 친구들이 정우한테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 가장 오랫동안 곁에서 어쩌면 엄마나 아빠보다, 정우 곁에서 더 오랜 시간 머물면서, 정우하고 인생을 보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니깐, 떼 놓을 부분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 아이를 좋게 만들려면, 할 수 없다. 내 아이의 친구들까지 좋게 만들 수 밖에 없겠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대안중학교 생각을 접었어요. 대신 학교를 바꾸자. 새로 만들 노력이면, 기존의 것을 바꾸는 노력이 더 수월하다. 학교 속으로 들어가자. 학교로 그 관심을 돌렸어요.
마침, 정우가 중학교 1학년 2학기 때 좋은 교장선생님이 오셨어요. 학교선생님들과 지역에서 쌓아 놓은 게 있어서 그랬는지 1학년 2학기부터 중학교가 변했어요. 학생들 의견을 존중해주고, 학생들의 시각에서 학교운영을 했어요.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걸 즐거워하기 시작했어요. 정우는 조금밖에 누리지를 못했지만, 둘째 윤호는 올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가게 되요.
친구들하고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잘 자라준 것 같아요. 저는 큰 애 작은애 터울이 여섯 살이라, 아이들두 명을 데리고, 오랫동안 학교에 쫓아다녔어요. 내 청춘을 다 바쳤다. 제 젊음을 다 바친 거예요. 올해 오십이예요. 30대에 큰애를 학교 보내면서부터, 학교를 거의 15년을 쫓아 다닌 것 같아요. 아이들한테 가장 필요한 시기에 학부모로써 필요한 행동을 했다는 생각이 있어요. 필요할 때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 이후는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갈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철저히 학부모입장에서 학교를 봤는데, 선생님들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또 다를 거예요. 이상입니다.
▷▶ 박신자 선생님 : 홍동지역은 학교공교육이 제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지역이라는 평가를
들어요. 풀무학교가 영향을 많이 끼쳤다고, 지역 연구 하시는
분들이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역과
함께하는 학교 만들기라는 합의를 만들기위해, 안정순선생님이 이야기한 그 만큼의 시간이 걸렸지요. 처음 홍동중학교 왔을 때, 아이들 공부시키지 마라, 보충수업에 대해서도 부모님들이 학교와서 아이들 빼가고, 그러면 학교는
어쩔 줄 몰라 하고, 그 때 학교에서는 두 학생을 보고 있는 거예요.
집에 데리고 가도 잘 할 수 있는 학생. 그것은 홍아사(홍동아이사랑)하고, 귀농자 자녀들은 집에 가도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합의는 지역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런
아이들까지 프로그램(보충수업 등)을 할 수 없게 만들어 지는
학교상황이 공교육 내에서 벌어지곤 했어요.
무작정 기다려도 아이는 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근 2-3년 사이에 많이 공감하게 되었지요. 홍동중학교 교장공모제하면서 교장선생님께서 지역을 향해, ‘학력과 인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지역에서 원래 나고 자란 아이들의 학력이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어요. 학교에서는 매월 토요일 날 부모 모임을 실시하기도 하고, 몇 사람이 원해도 연수를 해보자. 이렇게 5-6년 동안, 홍동중학교에서 몇 년 노력을 하면서 공교육이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보면, 학부모들이 다양한 목소리로 말씀을 해요. 생태적인 삶이 중요하다, 우리아이 행복하게 하고 싶어요, 공부도 잘 했으면 좋겠어요, 재능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홍동중학교에 있을 때, “홍동 부모님들이 학교에 어떤 것을 원할까?”라고 선생님들한테 물어봤어요. ‘내 자식 공부 잘 가르치고요. 더불어 플러스 알파 해달라는 이야기로 들려요.’ 라고 하셔요.
부모가 학교와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할까요? 홍동에서 10년 이상 있으면서, 적극적으로 학부모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만들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홍아사나, 아사모나 여기에서 했던 다양한 방식들이 학교로 들어와요. 어떤 것은 바로 학교에 적용되었고요. 홍아사에서 학생총회, 학생자치의 중요성을 논의한 적이 있었어요. 민들레(대안교육잡지)에 나온 어느 학교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마을 총회를 보니깐 너무나 민주적이지 않은 거예요. 지역에서 나고 자라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무수히 들었던 홍동에서, 마을 총회를 여는 방식은 굉장히 비민주적이었어요. 아직도 그래요. 여성은 발언권이 없고, 선거권도 없고요. 아이들이 이 문화를 보고 배우면 아이들이 그대로 되겠다는 불안감이 들었어요. 홍동중학교에 학생총회를 도입을 했어요. 학생총회를 잘 굴러가기도 하고, 개판이기도 한 과정을 겪고 있고요.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풀무학교를 가거나 이러면 한 발짝 성장할 수 있을 거다라고 생각하는데, 제자리 잡기 위해서는 몇 년이 더 걸릴 거예요.
학부모들이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면서, 학부모의 의견이 학교에 반영되고, 교육과정에 지역의 가치를 심고 싶어했어요. 하지만 실제 운영위원회에 들어가면, 생각만큼 잘 만들어지지 않아요. ‘범교과 교육과정 연구회’라고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한, 교육과정 연구회를 만들었어요. 홍동의 생태적인 가치, 지역 인프라를 활용한 체험학습 한 것들을 책으로도 만들고, 학교 교육과정에서 실현시키기 위해, 홍동중학교 ‘생태환경’수업은 그것이 발전해서 교육과정으로 들어간 거예요. 아이들이 그것으로 생태적인 삶이나, 자연의 소중함을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과정입니다. 다른 학교에는 없는 교육과정이에요.
십 몇 년 동안 노력한 결과로 만들어 낸 거예요. 프로그램들이 업그레이드 되어야 하는 과제가 있어요. 중학교도 논생물 조사를 하고요. 풀무학교에 가면 또 논생물조사를 해요. 물론 보는 것은 좀 달라지지만, 아이들이 같은 프로그램을 접했을 때, 배움의 신선함, 몰입의 정도는 달라요. 행복은 즐거움이 있어야 해요. 의미를 발견할 때, 행복하고요. 몰입할 때 행복을 느낄 수 있어요. 지역에서 지역의 가치를 학교에 실현한 것(지역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이 좀 더 정교하고, 고급화되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어요.
범교과 교육과정 연구회에서 지역으로 아이들을 보내서 마을이 학교가 되게 하자. 그래서 목공실, 빵공장, 공예하는 곳으로 아이를 보내서 했어요. 그런데 성공한 곳도 있고, 여전히 2005년부터 범교과과정(현재, 햇살배움터교육네트워크의 햇살요리, 햇살목공, 햇살요리 등)을 시작했는데, 7년 가까이 했는데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곳도 있어요. ‘마을에서 아이를 키우자’ 제안했던 것들이 체계화되고 교육적으로 실현되도록 노력하고, 학교와 결합하는 방식이 앞으로 학부모활동의 방향이 되면 좋겠습니다.
교육의 목적이 뭘까요? 인류평화예요. 인류평화에 기여하는 게 교육의 목적이에요. 그 다음은 통합이에요. 빈부격차의 통합이에요. 학교 현장을 통해서, 통합해보는 경험을 해보지 않으면, 사회에 나가서 갈라져 있는 상태에서 통합을 만들어내는 것은 훨씬 어려워요. 그걸 수업으로 만들어내고, 실현해야 하는 게 학교에서 해야 하는 과제예요. 홍동에서 이제 합의를 이루었다고 보는 생태적인 삶이예요.
이런 것들은 어떤 이슈, 단어만으로 실현되지 않아요. 홍동의 부모들은 굉장히 훌륭해요. 그런데 아이들한테 그것이 전수되는 통로가 잘 없습니다. 성장이 멈춰있는 아이들도 만나고, 손이 진짜로 많이 가서, 돌봐야 하고, 껴안아야 하는 아이들도 많아요. 학교하고 갈등이 있을 때 원색적인 부모의 요구가 학교로 그대로 와요. 욕을 하는 시대는 조금 지나갔어요. ‘내가 옳으니깐, 너희 입다물고 있어. 우리 아이가 이렇게 봤다고 하는데, 이게 맞으니깐 너희 가만히 있어.’ 아니거든요. 아이들은 넓은 창에, 아주 작은 창 하나를 봐요. 그런데 그 창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분은 부모님과 교사예요. 부모님과 교사가 거기서 손을 잡아야 해요. 반드시 아이의 성장을 중심에 놓고 대화하고, 중심에 놓고 지역에서 풀어가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여농센터에서 만들고, 사조직모임에서 만들고, 지금 공교육이 좀 자리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분명히 빠진 부분들이 있어요.
제가 학교에서, 홍동중학교에서 무슨 일을 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것은 있어요. ‘난 지역민이다. 마을에서 잘 났건, 못 났건,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건, 도벽이 있는 아이건, 평생 보고 살 거예요. 그 아이가 어른이 되면 마을에서 살 거 란 말이죠. 관계를 유지하고, 그 관계를 껴안고, 이 힘이 사실은 마을의 힘이에요. 귀농하신 분들, 교육에 열의 있는 분들이 들어와서 교육상황이 굉장히 좋아졌어요. 저는 그것이 홍동이 갖는 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옛날에는 굉장히 격렬히 부딪혔거든요. 보충수업 시키지 마라, 시켜야 된다. 가정방문을 가면, 서로 욕하기 바빴어요. 요즘은 그러지 않아요. 여기에 사시는 분들도 교육은 큰 틀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합의가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는데, 앞서 말한 십 몇 년의 시간이 만들어낸 작은 진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는 배우는 즐거움을 아이들에게 줘야 하는데요. 방과후라든가,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이 들어왔고요. 그것의 장단점이 있어요. 아이들의 삶이 풍성해졌다는 좋은 점도 있고. 아이들이 놀 여유가 없어졌다는 단점도 있고요. 아이들이 살아온 방식을 조금 바꿔주는 문화, 그것을 지역에서 어떻게 만들어서 조금 더 건강하고 조금 더 행복한 아이로 만들어갈까 그런 고민들이 되어야 하는 시기이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2009년에 풀무학교 창업식을 처음 갔는데, 주옥로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교육은 닮는 것이다’. 부모를 닮고, 선생님을 닮고, 사회를 닮고, 자연을 닮고, 우리마을은 어떤 모습을 닮게 해서, 아이들을 건강하게 할까, 그런 것들을 나누는 자리였으면 좋겠어요. 이상입니다.
▷▶ 사회자 : 이야기 듣는 내내 참 좋았어요. 두 분 선생님 고맙습니다. 소나무(곽영란) 선생님 어린이집에서 몇 년 되셨지요?
▷▶ 소나무 : 네, 갓골어린이집에서 한 30년 되었지요. 오늘 여기서, 아사모, 홍아사, 여농센터의 시작한 이야기를 구체저적으로 처음 들었어요. 어린이집은
각자의 원장이나, 교사들의 철학에 의해서 운영을 할 수 있었는데, 이제 정부에서 어린이집까지 표준 교육과정이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가능하면, 지역에서 해왔던 것을 구체적으로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지금 갓골어린이집이 난관에 봉착해 있어요. 규모가
자꾸 커지고, 부모들도 많아지니깐 어린이집도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야지 왜 안 가르치냐? 귀농하신 분들은 어린이집에서 왜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냐. 그런
거 하지 말라. 두 부류가 있어요. 앞서 선생님이 이야기했듯이, 집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책 한자, 동화책 하나 못 보는 애들이 많거든요. 거의 30퍼센트는 될 거예요. 그런 애들은 정말 그냥 둘 수가 없거든요. 그 아이들만 빼서 둘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런 많은 고민들이
있어요.
▷▶ 안정순 : 선생님들은 임기가 끝나면 끝이에요. 그럴 때 힘을 내고 자기 중심을 잡아야 하는 주체가 누굴까, 지역에서 추스를 수 밖에 없어요. 1년, 2년 여기서 임기를 채우고 왔다가는 선생님들의 그 무게와, 여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의 무게와 그걸 지켜봐야 하는 학부모가 느끼는 무게는 너무나 달라요. ‘그 무게가 무거운 사람일수록 나설 수 밖에 없다.’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자라기 위해서는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봐주는 시선. 아이한테 따뜻한 말을 던져주는 그런 존재가 필요해요.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아이가 컸을 때까지 영향을 주는 시간들이라 생각하면서, 좀 더 용기를 내고, 좀 더 인내심을 갖고 학교,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잘 했으면 좋겠어요.
▷▶ 박신자 : 홍동 아이들이 교사들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아요. 홍동의 아이들이 일도 잘 하고 멋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많거든요. 중학교에서 교사로써 보면 ‘제발 공부 좀 시키자.’ 저는 그런 이야기 많이 해요. ‘공부하지 말라는 이야기 그만 하세요. 애들 공부 너무 안 합니다.’ 사회가 변화하는 코드를 읽어내는 능력, 기초학력이 정말 부족해요. 굉장히 좋은 선생님들 만나고, 지역사회에서 좋은 경험을 하는데요. 그걸 습득 못하고 있어서 안타까움이 절절해요.
▷▶ 배지현 : 저는 안정순 선생님이 센터에 있으실 때부터, 많이 봐왔어요. 그때는 센터의 방과후 교실이 지역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보호막이 되었었고요. 거기서 정서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아이들이 그 선생님하고 계속 만나고, 그 선생님이 학부모가 아닌데도, 학교 선생님들 하고 소통을 하고, 공적으로 하는 게 필요하거든요. 센터에서 선생님으로 만나면서 애정을 가지고, 붙들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농촌학교의 가장 큰 장점은 3년, 6년을 같이 하기 때문에, 누가 손이 필요하고, 누가 약하고 이런 걸 다 알거든요. 그 아이들을 지역사회에서 어떤 안전망을 해서 받혀줄 것인가 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풀 것인가의 문제가 하나고요.
또 하나 정말 중요한 것은 박신자 선생님이 말했듯이, ‘그렇지 않은 경험’을 해보는 것. 집에서 습관화된 것 외에 다른 방식의 애정관계을 접할 수 있는 시간, 공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도현이 반에도 할머니하고만 있고, 거의 생활에서는 계속 놓쳐지는 게 많고, 다른 데서는 보충되지 않는 애들이 늘 있어요. 센터 선생님이 뭘 한다기보다는 정서적인 교류거든요. 숙제를 봐주면서, 활동을 하나씩 해가고, 뭐가 필요한 아이인지, 정서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선생님과의 교류가 정말 필요한 게 아닌가. 그 때의 그 부분이 지금 지역에 없다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문제가 있는 애들도 다른 애들과 섞여서 우르르 다 센터로 오는 거고,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요즘 좀 이상하데이, 집에 무슨 일이 있나’ 물어봤어요. 지역에 단체들이 많이 있지만, 교육에 몰입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니잖아요. 한동안 초등학교가 돈이 있으니깐 (전원학교 지원사업) 학교로 다 가지고 가셨다가, 지금은 놓쳐졌던 부분이고, 센터에서도 학교에서 하는 부분이 있으니깐 더 이상 개입을 안 하려는 부분이 있어요. 실은 엄마들 중에도 멘토라든가, 글자를 잘 모르는 애들을 가르쳐주려는 애정을 가진 분들도 계셔요. 센터라는 공간에서 공동적, 구조적으로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 최문철 : 저는 안정순 선생님이 학부모가 힘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그런데 학부모도 졸업을 한다는 그 부분에 맹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변화가 생기면 앞선 세대는 숙제를 이미 해결하고 간 거고. 새로운 내 아이라는 새로운 숙제는 항상 새로 생기는 것 같아요. 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선생님들도 해결할 수가 없고.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배지현선생님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학교 밖에서 아이들을 오랫동안 지켜 볼 수 있는 사람이 구조나, 조직으로 있는 게 너무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꿈이 자라는 뜰> 이야기이긴 하지만, 꿈뜰이 3년 되었어요. 3년 지나면서, 초중고등학교 특수학급 선생님이 다 바뀌셨어요. 선생님 바뀌니깐 그 여파를 다 온몸으로 겪었거든요. 처음에 박신자선생님과 같이 훌륭한 분이 계셨을 때는 소통도 편리하고 의지도 맞았어요. 본인이 시작하지 않은 일을 새로 부임해 와서 맡게 되면 누구에게라도 부담스러운 일이 되는 거예요. 새로 온 선생님들도 한 해가 지나면서, 마음이 바뀌고 ‘이런 게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일이다.’ 라는 이야기를 한 해가 지나고 하세요. 꿈뜰이라는 조직이 그나마 학교 밖에 있으니깐, 그 안에서 약간의 자생력을 가지고 버틸 수 있는 힘이 있구나. 배선생님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초등학부모들만 모여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초중고나 지역의 젊은 교사들, 주민교사들이, 일주일에 2-3일이라도 모여서 같이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조직이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조직을 만들고 키워 낼 수 있는 마을이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배지현 : 또 하나 추진했으면 하는 게 있어요. 지역에 있는 (고등)학생들 중에서 농적 진로라든가, 이런 다음과정에 대한 모색이 일어나지만, 어떤 혜택도 못 받고 있거든요. 성적이 안되면 (풀무학교에 진학할 수 없고) 주변 지역 고등학교를 가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지역 학생들을 위해서 기금을 마련해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초등학교 때 접하는 것보다는, 중학교나 고등학생 때, 똑 같은 경험을 했을 때는 더 큰 울림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기회를 못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풀무학교가 지역 학생들을 위해서 방학 때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하는 방법도 있겠고요. 지역에서 공동기금을 모아서 그런 교육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요. 도서관에도 보면, 밤에 광천제일고 학생들이 오거든요. 옛날에 센터에 다녔던 학생들이에요. 학생들을 모이게 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될 수도 있으니깐요.
▷▶ 박신자 : 안전망사업이라고 해서, 햇살배움터에서 지역에서 어려운 아이들을 학교에서 추천 받아서, 교사와 멘토 선생님들이 상황을 공유하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모임을 두 달에 한번씩 모이고 있거든요. 센터와 같이 공적인 기관에서 맡아주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거기까지는 발전하지 못한 단계이고요. 저희 내부에서 건강한 멘토를 계속 유지하는 것도 과제입니다.
▷▶ 김정현 : 원래 저희 ‘범교과 교육과정 연구회’에서 사실 처음에 거기에 초점이 있었어요. 교육비가 무료라는 것 자체가 그런 애들을 돌보자는 의미가 있었고요. 지역 배움터로 보냈지만, 관리가 잘 안되었어요. 아이들이 지속적인 교육을 원하지를 않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돌봄이거든요. 범교과(범교과 교육과정 연구회)하면서 깨달은 것은 이 아이들한테는 어떤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도, 지속적인 애정을 가지고 날마다 보는 어떤 누군가가 있고, 그 사람을 통해 어떤 재능이 발견되고 연결되면, 공방이나 목공으로 연결되고 아이들이 자라고, 다음단계로 나가고. 이런 시스템이 필요한 거예요.
▷▶ 안정순 : 이전에는 학교 밖 배움터가 있었어요. 여농센터에서 그 역할을 했고. 학교와 학부모의 중간역할. 아이들의 학년, 학제의 구분 없이 아이들을 편안하게 한 사람이 고정된 장소에서 선생님이 있으면, 아이들이 편하게 약간 이완된 상태에서 와서 자기를 풀어놓고 집으로 가고, 그러는 공간이 있었던 거예요. 선생님들은 그 아이들을 거둬들이고, 다독거리고, 집에 데려다 주고, 그러면서 관계를 품어주는 그 곳이 여농센터에 있었어요. 지역에서 해야 할 일은 ‘우리가 고정되지 않고, 그때 그때, 어떤 형태로 아이들을 지원할 것인가, 항상 관심을 갖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것’이예요.
예전에 여농센터에서 했던 공부방에서 했던 기능이, 내용은 좀 달라지고 인원이 더 작아지더라도, 그것이 필요하겠다. 여농센터는 우리의 것, 지역의 것이잖아요. 공간이라도 제공받으면,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아이들이 엄마 기다리는 동안, 일정하게 안전하게 가 있을 공간만 있으면,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돌볼 수도 있고요. 저는 장곡에서 지역아동센터 하고 있는데, 모든 면 지역에 학교 밖에 그런 공간이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농촌은 애들이 집에 가도 맘 붙이지 못하는 상황들이 많아요.
▷▶ 박신자 : 애들이 돌봄을 받지 못하는 시간이 많아요. 집에 가면 진짜 노출되어 있어요.
▷▶ 우현주 : 이 자리에서 진지하게, 이 주제만 가지고 이야기를 한번 했으면 좋겠어요.
▷▶ 최문철 : 네. 다음 번 주제는 마을에서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어떻게 돌봄을 전할 수 있을까 라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면 좋겠고요. 또한, 학교에 선생님이 계속 바뀌는데, 바뀌는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학교 밖에 어떻게 조직을 만들 수 있을까 풀어 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우현주 : 제가 멘토하면서, 큰 아이들을 맡아왔잖아요.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필요한 게 너무 많아요. 그걸 풀어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짧게 말하자면, 엄마 없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이 문제를 보이든, 문제를 안 보이든, 초등학교 때부터 돌볼 사람을 꼭 붙여줘야 해요. 중학교에 올라가면, 애들이 포기를 해요. 학습누적, 정서누적, 결핍누적이 극심해서 마음을 여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그리고 중학교를 졸업하면 그냥 정지되어요. 풀무학교가 받아주지 않으면, (저는 풀무학교가 다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이들에게 공항상태가 와요.
중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지역 어른들이 많이 돌봐주잖아요. 그런데, 일단 토요일, 일요일, 방과후에 시간이 남으면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정 붙일 데가 없어요. 그리고 학습이 안되니깐, 학교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고, 정서적 결핍이 누적되어 있으니, 친구관계도 좋지 않아요. 아무것도 안 되요. 저는 그래서 할 이야기가 많아요. 혼자서 고민하거나, 멘토링에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멘토하는 사람들만의 모임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라, 지역에서 같이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살면서, 아이들도 앞으로도 늘 만나게 될 아이들을 지금 돌보지 않으면 안되겠다. 마을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이겠다. 이 문제를 일상적으로 접하지 않으면 자꾸 잊어버리잖아요. 그러니깐,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일까지 나눠서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안정순 : 다음주 주제로 좋네요.
▷▶ 최문철 : 안 그래도, 그 말씀 드리려 했는데요. 처음에 햇살배움터 교육네트워크 모임은 두 번을 모이자고 생각했었어요. 첫째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날것으로 꺼내 들어보자’ 였고요. 두 번째는 선대와 후대의 연결고리가 같은 동네에 살기 때문에 뭔가 이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착각이었다. 가시권 안에는 있지만, 집중적인 관계나 대화는 없었던,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상황이어서, ‘선배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는 시간’을 오늘 이렇게 두 번째 자리를 가졌고요. 이런 모임이 더 필요할까, 더 필요하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여쭤보려 했는데, 자연스럽게 발제를 해주셨네요. 다음에 한번 더 모임을 갖도록 하고요. 다음 번 주제는 마을에서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어떻게 돌봄을 전할 수 있을까 라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면 좋겠고요. 또한, 학교에 선생님이 계속 바뀌는데, 바뀌는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학교 밖에 조직들도 어떻게 조직을 만들 수 있을까 풀어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신준수 : 박신자 선생님께서 교육이 인류평화라는 큰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하셨는데, 왜 자꾸 학교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에서 사는 시간이 9시부터 4시까지 여섯 일곱 시간이고, 나머지 더 많은 시간은 가정이나, 친구들하고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여기에 모인 우리들도 안 좋은 여건의 학교에서 뚜드려 맞아가며 살아왔는데, 홍동이라는 곳에서 진보적인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잖아요. 그 안 좋은 학교에서 자란 우리가. 꼭 교육이 학교에서만 되는 게 아니지 않는가. 인류평화라는 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가정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대하고 교육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될 것 같아요.
▷▶ 최문철 : 다 다음 모임에는 그 주제로 할까요?(하하) 내년에도 햇살배움터 교육네트워크에서 하고 싶은 일이 그 동안 안 했던 일, 꼭 필요한 일을 찾아서 해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있어요. 돈이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고, 하고 싶은 사람만 있으면 책 한 권 붙들고 볼 사람이 두세 사람만 있어도 되는 것이니깐. 그런 모임을 할 테니깐, 준수씨가 같이 와서 꼭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 박은빈 : 저는 선생님들 이야기 들으면서, 제가 살아온 시간을 돌아봤는데, 우리 엄마는 뭐했을까? 고등학교는 풀무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새로운 신세계가 열렸고요. 중학교 때까지 선생님들은 뭘 했을까? 주옥 같은 이야기 들어서, 앞으로 살아갈 방향과 놓쳤던 것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제가 느낀 것을 다 이야기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고요. 저는 아직 학부모가 아니지만, 지역에서 지내는 언니로, 어떤 언니로 지내야 할까 하는 생각. 저는 어디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뿌리가 있는 그 친구들이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까? 저는 뒤늦게 뿌리 내리는 삶에 대해서 행복함이 있다고 그 친구들한테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거예요. 이미 누리고 있는 친구들한테. 저는 그 친구들의 토양, 여건은 잘 몰라요. 제가 경험해 보지 않아서요. 제 동생은 뿌리가 있는 동생이에요. 여기에 있는 친구들 하고 뭘 나눌 수 있을까, 이 그릇으로 뭘 나눌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여기서 지낸 지 1년 가까이 되는데, 올 여름에 풀무학교 후배들하고 했던 게, 농(農)진로캠프라고 해서 저는 풀무학교를 다닐 때, 홍동에서 살 수 있으리라는 상상을 전혀 할 수 없었어요. 심지어는 전공부를 간다는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왜냐면 소개해주는 선생님도 없었고, 연결해주는 지역 분들과 관계를 맺지도 못했고요. 대학교를 다니면서 계속 여기 홍동을 기웃거렸어요. 왜냐면 사회복지를 전공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어떻게 살지’의 문제더라고요. 배우면서 뒤늦게 여기서 일하게 된 건데, 이렇게 돌아오지 말고, 너희들 가장 잘 볼 수 있는 그때에 봤으면 좋겠다. 잠깐이지만 마을 분들을 현장에 찾아가서 이야기 듣고 그런 걸 했어요. 사실 지역과 학교가 연결되어 있으면 그 연결고리는 필요 없을 텐데, 그런 고민도 하고 있어요. 풀무학교 애들은 실상 지역의 아이들이 아닌 부분이 많잖아요. 그래서 풀무학교에 대한 고민도 많아지고 있는데, 이모임을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았으면 좋겠다. 많이 배우고 싶어요.
▷▶ 정영희 : 저는 요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학교는 꼭 가야 할까? 이런 고민을 몇 달째 하고 있는데, 큰 애가 5학년이라 운영위원을 하든 5년 동안 학교에서 뭔가 변화를 위해 뭔가 해보기도 했지만, 과연 그런 것들이 우리 아이들한테 도움이 되었나? 나아가서 우리아이 친구들한테 도움이 되었나 생각을 해볼 때, 부정적이고 허탈하기도 하고. 희망도 더 안 보이는 경험을 많이 했어요. 물론 하다가 실망한 부분이 더 많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제도나 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내용에 대해서 더 많은 의문을 제기했던 게 아닌가. 지금 초등교육이라는 게 좋은 국민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지, 참다운 사람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좋은 선생님 한 두 분을 만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겠구나. 내 아이가 학교를 꼭 가야 하나 라는 질문이 들고, 학교 안에서 뭔가를 해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것도 필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다양한 아이들이 원하는 교육이 다양하게 정립될 때 오히려 학교도 건강해 질 수 있고, 학교에 던지는 뭔가가 있고 학교 안에 있는 아이들도 돌파구가 생기지 않을까. 다양성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학교 안에서 건강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하고, 학교를 뛰쳐나오는 사람들도 있어야 하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갖고 있는데, 이것도 역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은 여전히 있고,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 아이들에 대한 시선이나 생각은 계속 갖고 해야 하기 때문에 지역의 교육은 꼭 살아있어야 한다. 우리 아이가 학교 안에 있든, 밖에 있든 학교교장 선생님이 바뀌든 안 바뀌든, 지역이 지역의 교육을 계속 가지고 가면, 아이들은 좀 더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끝>
● 지난 겨울, 햇살배움터교육네트워크에서는 마을+교육 수다방을 세 번 열었다. 세번째 모임(2012. 12. 17)에서는 ‘마을이 돌보는 아이들’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 함께 이야기 나눈 사람들
안정순(장곡신나는지역아동센터 교사), 박신자(홍동중학교를 거쳐, 지금은 광천여중 특수교사), 소나무(갓골어린이집 교사), 김정연(초등교사/ 범교과 교육과정 연구회),
최문철(햇살배움터 운영위원, 꿈이자라는뜰), 박은빈(교육농연구소, 풀무고
졸업생), 우현주(학부모,
멘토), 정영희(학부모, 멘토), 신준수(평촌요구르트, 학부모), 배지현(풀무고
교사, 학부모), 최수영(홍동주민).
○ 정리 : 최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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