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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와 알림

지역이 함께 키우고 성장하는 우리마을 희망들 [삼성꿈장학재단 웹진]

 

 

충청남도 홍성 홍동면에 위치한 ‘ㅋㅋ만화방’ 햇살배움터는 지난 해 여름 처음 문을 연, 오롯이 아이들을 위한 문화공간이다. 이 지역은 친환경농업특구로 원주민과 귀농·귀촌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땅의 가치와 농업의 가능성을 믿는 어른들이 모인 마을. 문제는 유기농법에 있어서는 국내 손꼽히는 지역일지라도 아이들 교육문제는 여느 농촌지역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 학교 수업 외에는 예술이나 문화적 혜택이 열악하고, 사교육 역시 쉽지 않은 환경,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더 많은 성장의 기회를 줄 수 있을지에 대해 교사와 학부모, 지역주민이 함께 머리를 맞댄 결과가 바로 ‘햇살배움터’다.

삼성꿈장학재단 배움터교육지원사업의 지원을 받고 있는 ‘햇살배움터’는 아이들이 지역의 가치를 배우고, 성장하며 그 안에서 진로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홍동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비롯한 인근의 5개 공교육기관과 논배미, 원예조합가꿈, 갓골유기농업영농조합법인 등 11개 지역 기반 기관이 연계해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그중 ‘ㅋㅋ만화방’은 마땅히 여가시간을 보낼만한 공간이 부족한 아이들을 위해 재단의 지원과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도움으로 완성된 공간이다.

“그동안 배움터 사업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참여할 만한 프로그램에 집중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애들을 위한 프로그램만 있지, 공간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이들이 정말 숨 쉴 수 있는 ‘아지트’ 같은 공간이요. 그런데 한창 사춘기의 애들에게 ‘여기가 너희 공간이야 놀러와’라고 한다고 그냥 오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만화방이었어요. 만화라면 애들이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죠.”

배움터 사무국 선생님들의 아이디어는 곧장 지역 주민들과 공유됐고, 어른들은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리고 다시 3개월, 차근차근히 준비해 교육적인 내용과 방식을 세심하게 고려한 만화방이 문을 열었다. 친구들과 모여서 놀 공간이 없어 읍내까지 버스를 타고 나가거나 흔한 편의점 하나 없어 비오는 날이면 다리 밑에서 라면을 먹던 아이들이 이제는 만화방으로 모인다.

 

“만화방에 와서 제일 좋은 건 갈 곳이 생겼다는 거예요. 그 전에는 수다라도 떨려면 읍내까지 나가서, 카페 같은 데를 가야 했으니까 돈이 아까웠죠. 그런데 이제는 우리끼리 할 이야기가 있으면 만화방에 와요.”
당찬 성격의 세현이와 뮤지컬 배우가 꿈인 수빈이, 타칭 ‘댄싱머신’ 소연이는 만화방에 오는 날이면 늘 함께 하는 단짝 친구들이다. 수빈이가 좋아하는 남자아이 이야기, 어제는 네일아티스트, 오늘은 연예인으로 매일 꿈이 바뀌는 소연이의 고민, 세현이의 성적 걱정. 중학교 2학년,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털어놓지 못할 ‘비밀’이 생긴 여자아이들은 이곳에 모여 소곤소곤 수다를 즐긴다.

“그냥 숙제도 하고, 친구들 게임하는 거 구경하거나 좋아하는 노래 나오면 춤도 추고, 애들이랑 학교에서 못했던 이야기도 하고 그게 너무 재밌어요. 이건 비밀인데 사실 전에는 애들이랑 진짜 친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여기서 막 서로 속에 있는 말까지 하다보니까 ‘진짜’ 친해졌어요.”
스스로 학교에서 ‘미친 존재감’을 뽐낸다고 말하는 소연이가 그 새를 못 참고 아이돌 춤을 따라 추는 동안 수빈이와 세현이는 만화방을 ‘제2의 집’이라고 표현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을 해도 괜찮은 공간. 서로 입을 맞춘 듯 같은 말을 내뱉는 순간 시선을 마주한 아이들 사이로 까르르 웃음꽃이 터진다.

열 댓 명이 훌쩍 넘는 아이들로 채워진 공간은 분명 소란스럽고 시끌벅적하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아이들 나름대로의 규칙은 분명히 존재한다. 위험한 장난을 치거나 다른 친구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 어른들의 걱정 어린 잔소리 없이도 아이들은 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해나가고 있었다.

친구들의 수다에 아랑곳없이 만화책 탐독에 한창인 동운이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만화방을 즐긴다. 학교와 집이 생활공간의 전부였던 동운이에게 만화 방은 ‘여유공간’이다. 학과 수업 중 수학이 제일 좋고, 꿈이란 자신이 가장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에 꿈에 대해 신중하게 고민 중이라는 꼼꼼쟁이 동운이는 매주 일요일, 두 살 터울의 누나와 나란히 만화방을 찾는다.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라 만화방에 머무는 시간 동안에는 각자 좋아하는 만화책 읽기에 열중한다는 남매는 다시 40분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도란도란 그날 읽은 만화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초등학생인 동생이 조금 더 자라면 남매가 다 같이 만화방에 오고 싶다는 동운이에게 만화방은 형제들과 어린 시절을 공유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사실 배움터 선생님들이 만화방을 통해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 역시 바로 그 추억이다.
“거창한 교육적 목표를 가지고 만화방을 만든 것은 아니에요. 여기서 아이들이 어떤 가치나 깨달음을 얻기를 바랐던 것도 아니죠. ‘만화방’은 그저 ‘만화방’으로 이용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조금 욕심낸다면, 만화방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어른이 된 후에도 계속 살고 싶다고 생각해 준다면 좋을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지역 안에서 진로를 찾고,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도록 학교와 지역이 함께 아이들 교육을 책임지는 것. 사실 이것이 지역교육네트워크인 ‘햇살배움터’의 교육목표이기도 하다. ‘ㅋㅋ 만화방’을 꾸려나가는 것 역시 지역 어른들의 이해와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 아이들을 위한 공간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해 주는 어른들이 있기에 농촌의 빠듯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인 후원금이 모여 만화방의 기본 운영비가 충당된다.

지역 어른들의 노력은 그뿐만이 아니다. 햇살배움터를 주축으로 아이들이 마을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마을교육 안전망’을 구축하고 진로탐색을 위한 ‘마을작업장학교’와 다양한 문화정서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그중 지속가능한 마을교육을 위해서 지역 내 교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마을교사 양성프로그램은 햇살배움터의 가장 큰 성과다. 단적인 예로 현재 햇살배움터 프로그램의 80% 이상을 마을교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논배미’의 ‘햇살농장’ 역시 생태교육 마을교사양성과정을 통해 교사 역량을 키운 마을교사들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마을작업장학교다. ‘햇살농장’은 농촌지역에 살지만, 정작 농촌과 농사의 중요성에 대해 모르는 아이들에게 땅과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으로, 홍동중학교 2학년 아이들은 올 봄부터 일주일에 두 번, 학교 정규수업을 통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햇살과 봄비가 힘겨루기를 하는 변덕스러운 4월 초 날씨 속 농작물을 심기 전 밭을 갈아, 원하는 모양으로 만드는 수업이 진행됐다. 수업 내용에 관한 선생님의 간단한 설명이 끝나자 아이들은 일 년간 자신들이 직접 가꿀 밭을 사이에 두고 밭 모양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꾸밀 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성적이라는 잣대로만 평가 받던 교실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조금 더 수다스러워진다. 처음에는 쭈뼛대던 아이들이 이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영어는 못해도 삽질만은 자신 있는 진우(가명)는 반장인 세현이에게 삽질을 가르치기도 하고,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던 지훈이(가명)는 밭고랑을 만드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 누군가 나서서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서로의 장점을 발견하고, 응원하고, 배우고, 성장한다.

‘햇살농장’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논배미’의 조미경 선생님은 아이들이 단순히 농작물을 잘 키우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농업과 생명의 가치를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농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아이들이 직접 농사도 짓고, 수확한 농작물을 나눠 먹으며 농사의 가치에 대해 배우게 되는 거죠.”

그리고 아이들이 그렇게 땅과 농업, 나아가 살고 있는 지역의 가치에 대해 알아갈수록 어른들 역시 새로운 희망과 마주하게 됐다. 바로 진로다. 이 지역에서 두 아들을 키운 학부모이자 햇살배움터의 운영위원을 2년 째 맡고 있는 홍동중학교의 양도길 선생님은 지역의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며, 아이들이 그 안에서 진로를 찾기를 바란다.

“한 반에 스무 명의 아이들이 있다면 스무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학교 정규 수업 외의 프로그램이 필요하죠. 예를 들어 교실 안에서는 자신감이 없던 한 녀석이 생태식물에 관해서는 잘 안다고 생각해보세요. 반 친구들도 모르는 생태식물이 있으면 그 녀석한테 물어보고, 그러다 보면 자신감이 생겨서 자연스럽게 수업 중 태도까지 달라지죠. 단순히 정서적인 부분에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에요. 지역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 역시 다양해지죠.”

생태식물에 대해 잘 아는 아이라면 생태식물학자를 꿈꿀 수도 있고, 직접 농사를 짓거나 농업과 관련한 친환경비료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직업군에 대한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는 것. 공부만이 최선이다, 농촌에서 자랐으니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열린 가능성을 가지고 되도록 많은 아이들이 지역의 가치를 배우며 성장하길 바라는 것이 선생님을 비롯한 지역 어른들의 바람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역 어른들의 희망 가운데는 햇살배움터가 있다. 귀농 당시만 해도 정말 농사만 짓고 살 줄 알았다는 이재혁 선생님은 처음에는 지역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시작했던 일이지만, 오히려 ‘교육’이라는 공통된 주제가 지역민들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구심점 역할까지 담당한다고 말한다.

더욱이 아이들만큼이나 사업에 참여한 어른들의 교육적 역량 역시 한 해, 한 해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 경제적 자립구조를 위해 교육형협동조합으로의 변화를 준비 중이라는 ‘햇살배움터’에서는 오늘도 아이들의 꿈을 위한 지역 어른들의 치열한, 그러나 행복한 고민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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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배움터교육네트워크

후원 : 삼성꿈장학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