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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 사업/간행물 원고

<2016년 겨울호> 혜주와 함께 쌓아가는 추억들

<햇살멘토링_정서·생활지원>

혜주와 함께 쌓아가는 추억들

김순임_멘토교사

 

혜주를 만난 지 3주 됐다. 지난 번 만남 때 전화가 가능하다고 했지. 혜주에게 전화를 했다. 안 받는다. 조금 후에 전화가 왔다. “선생님, 안가셨어요?” 1월에 여행 간다고 얘기했는데 기억을 하고 있구나. 고맙기도 하지. “어떻게 지내니?” “학교에요.” 방학인데 교과 캠프로 학교에 있다고 한다. 묻는 말에 종알종알 대답한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만 들어도 혜주가 어떤 모습일지 짐작이 된다. 방학인데 학교 가니까 방학 같지 않겠다. 늦잠도 못자고등등 혜주의 마음을 읽어주었다. 목소리가 밝다.

 

내일 여행 가는데 혜주 목소리 듣고 갈라고 전화했지. 2월에 동생들이랑 만나자작년 1년은 학습연구년으로 학교를 쉬어서 매주 만나서 모래놀이를 했다. 모래놀이상자 속에서 혜주가 창조하는 세계에 초대받은 지난 1, 혜주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고, 혜주의 성장을 지켜보는 참 고맙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올해 1학기는 복직을 해서 혜주와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 주말에 주로 만났다. 부모님이 일 나가시면 혜주가 동생들을 돌봐야 해서 부모님이 안 계실 때 집으로 갔다. 처음에는 어색해하고 어려워하던 막내 미나가 엄마라고 부르며 달려와 안겼다. 만나서 함께 한 일은 거실에 있는 이불개기, 바닥 쓸고 밥풀 닦기, 그릇들 싱크대에 넣기, 청소를 마치고 나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내가 이제 조금은 달라졌네.” 하자 영철이 수줍은 듯 웃으며 얼른 받았다. “아주 많이 달라졌어요.” 그날 영철이와 미나의 분주했던 모습이 떠올라 지금도 웃음이 난다. 청소를 마치고 사간 피자를 맛있게 먹고 끝말잇기 놀이를 했다. 헤어질 때 미나와 영철이가 밖에 나와서 손을 몇 번이고 흔들었다. 다음에 또 오겠다는 말하자, 몇 밤 자고 오냐고 물었다. 만남을 아이들이 기다려준다는 생각에 고맙기도 하면서 자주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지난 10월에 있었던 혜주와의 만남.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이 요청하고 혜주도 원해서, 우리 식구들이 다니는 미용실에 들러서 머리를 짧게 자르기로 했다. 미용실 원장님에게 미리 혜주를 위해 머리를 손질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이야기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늘 그렇듯이 원장님은 혜주의 머리를 정성을 다해 자르고 손질하고 나서 혜주에게 혜주야, 이 세상에 하나뿐인 너만을 위한 머리야. 아줌마가 혜주 머리를 예쁘게 자를 수 있게 해주어서 정말 고마워. 무척 행복해몇 번이고 행복하다, 행복하다 하시며 머리를 손질하고 관리하는 법을 일러주었다. 짧은 머리를 마음에 들어 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2월에 만나면 미용실 가자고 해봐야겠다.

 

한 번은 투박한 운동화 끈으로 만든 팔찌를 차고 있었다. 솜씨가 근사했다. 혜주가 좋아하는 실이 필요하다고 해서 문구점에 들러 혜주가 맘에 들어 하는 실을 골랐다. 여러 색 실을 고른 그날 저녁에 혜주가 메시지로 사진을 보냈다. 집에 가자마자 팔찌를 만들어서 사진을 보낸 것이다. 그 다음날은 학교에서 친구랑 같이 팔찌를 차고 찍은 사진도 보냈다. 혜주가 좋아하는 일에 열성을 다하고 몰두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고 안심이 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경험들이 쌓여 혜주의 미래를 안내해 갈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지역에서 멘토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햇살배움터에 감사하고, 아이들에게 행복한 삶을 경험하게 해주는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에게 감사하고, 혜주의 머리를 만지며 혜주를 만나 진심으로 행복하다 말해주는 어른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무엇보다 이런 삶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혜주의 존재 자체로 감사하다